1999년이었을지, 2000년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어딘가에서 슬램덩크 만화책을 처음 보고 난 후 흠뻑 빠져버렸다. 그때 당시에는 만화방에서 만화책을 빌려 보는 일이 흔한 일이었기에 아마도 만화방 어딘가에서 잠시 뭘 볼지 고르면서 보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다 인기에 힘입어 2001년 약간은 큰 사이즈로 완전판 슬램덩크가 출시되었었다. 첫 편을 보고 난 후 난 흠뻑 빠져버렸고, 완전판은 1권부터 24권까지 모두 사 모으게 되었다. 아직 학생이었지만 버거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나는 매달 나오는 약간의 월급에서 이 슬램덩크 만화를 사서 모아 보는 게 꽤 큰 즐거움이었다.
일본에 오고 난 후, 슬램덩크의 무대 배경지로 유명한 가마쿠라가 가 보고 싶었던 이유도 순전히 슬램덩크 때문이었다. 실제로 다니고 있는 에노덴(江ノ電)을 타보기도 하고, 에노덴 역 중에 하나인 가마쿠라고등학교 앞 역(鎌倉高校前駅)에 내리면, 슬램덩크 오프닝에 나오는 장면의 구도 그대로를 카메라에 담을 수도 있다.
당시에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중국 등 아시아에서 꽤 인기였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일본에 오는 많은 관광객들이 가마쿠마에 성지순례라고 하면서 슬램덩크의 추억을 찾으러 간다. 현재 일본에서는 영화 개봉을 해서인지 그리고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가마쿠라에 꽤 많은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고 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거주지로도 인기가 높아진 가마쿠라는 도쿄에서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출퇴근이 용이한 곳은 아니지만, 서핑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인기이고 도심과 벗어난 환경을 원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보니 맛집 또한 많고, 도쿄와는 다른 지방스러운 멋과 환경이 잘 남아있는 곳이다.
15년 넘게 알고 지내는 일본 친구에게 이 영화만은 같이 보자고 서로 약속을 하고 지난 월요일에 영화관에서 보고 왔다. 육아를 하면서 영화관 구경은 정말 힘든 일이지만, 남편에게 이것만큼은 진짜 꼭 영화관에서 보고 싶다는 나의 요청에! 하루씩 번갈아서 영화관을 가기로 했다. 후훗 (남편은 아바타를 보고 올 생각이란다.)
현재 일본 박스오피스는 당연히 이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예매율 1위이다. 나는 집에서 가까운 우에노(上野)에 있는 토호시네마(TOHO シネマ)에서 봤는데, 스크린이 4개였고, 영화관에 가기 전인 하루 전날 예약 시만 해도 꽤 자리가 여유로웠다. 일본에서는 2022년 12월 3일에 개봉해서 벌써 2주 가까이 되고 있기 때문에 자리가 여유로운가 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영화관에 가니, 만석이였다! 제일 앞줄까지 사람으로 빽빽한 상태로 영화를 보고 왔다.
개인적으로 나와 같은 세대에 슬램덩크에 추억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꼭 영화를 봤으면 하는 마음에 아무런 스포를 하지 않으려 한다. 이미 인터넷에 검색하면 내용이 벌써 나와 있기 때문에 나무위키라든지 그런 것도 찾아보지 말았으면 한다.
이미 익숙한 강백호(사쿠라이 하나미치)와 서태웅(루카와 카에데)의 티격태격은 여전하고, 만화책에서 보던 코믹스러운 신이 중간중간 나오기 때문에 그때 그 재미를 여전히 느낄 수 있다.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인물에 대해서 집중 탐구하는 느낌으로 만들어졌기에 새로운 스토리가 들어가서 슬램덩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전혀 문제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오히려 영화를 보고 나면 원작을 더 보고 싶어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일본에서도 영화를 본 후 옛 향수를 더듬어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다시 보고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나와 같이 보았던 친구도 티브이판 애니메이션을 다시 보고 싶다면서 아마존 프라임을 통해 다시 보고 있다고 한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생각한 몇 가지가 있다면,
손수건을 챙기기 잘했다는 것, 굿즈를 사고 싶지만 이미 영화가 시작한 지 하루 만에 다 팔려버려서 살 수가 없다는 것, 애니메이션을 한 번 봐야겠다는 것.
현재 일본 내에 있는 슬램덩크 팬들은 만화파와 애니메이션파로 나뉜다. 나는 완전판을 통해 만화만 보았는데, 나와 함께 영화를 관람한 일본 친구는 티브이 애니메이션으로만 봤다고 한다. 만화를 본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들은 영화판에 꽤 큰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내가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날, 회사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슬램덩크 영화를 보고 왔다고 하자, 광팬인 몇 명이 너무나 보고 싶지만, 성우가 바뀐 게 용서가 안돼서 아직 안 보고 있다는 말을 두 명에게서나 들었다.
이유인 즉, 애니메이션에서의 기존 성우가 아닌 새로운 성우들로 바뀐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실제로 한 명의 성우가 나이가 들어 돌아가신 분도 있고, 대부분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때의 그 목소리가 아니기 때문의 나의 하나미치, 나의 루카와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 응?)
몇 사람은 사람이 좀 없을 때 보려고 일부러 인터넷으로 검색도 안 하고 있다고 하고, 영화 보기 전에 애니메이션 혹은 만화를 한 번 다시 보는 중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슬램덩크를 본 30대 이상일 경우에는 이런 반응이고, 20대 후반 중에는 슬램덩크를 안 봐서 별 감흥이 없다는 젊은 친구도 있었다. 슬램덩크의 광팬 몇 명이 "이 만화를 보지 않는 건 인생을 손해 보고 있는 거야."라는 말로 설득을 하면서 꼭 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일본의 광팬들은 무섭다.)
정말 오랜만에 일본에 살고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짧은 순간이었다. 이 영화를 느지막이 개봉하는 한국에 사는 친구들보다 먼저 보았다는 만족감에 잠시 젖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국에서는 2023년 1월 4일에 개봉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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