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공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신 커피가 너무 맛있게 느껴져서 문득 묘한 느낌을 받았다. 병원 검진은 화요일로 예정되어 있었고, 그런 묘한 기분을 가진 채로 월요일을 지나쳤다.
그리고 예정대로 진행된 병원 검진.
나는 시험관 아기(체외수정)로 임신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꽤 빠른 주수인 4주에 임신을 확인했었는데, 보통 6주 때부터 아기의 심장 소리를 확인할 수가 있다. 첫째 아이 때에는 심장 소리가 굉장히 우렁찼는데, 이번 임신 때는 6주 때에 심장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었다. 아직 6주라서 그럴 수 있다면서 다음 주에 한번 더 확인해보자고 했었는데, 7주 때의 검진 시에도 심장 소리가 별로 좋지 않다, 심장 박동 수가 좋지 않다 등의 말들이 있었다.
매번 검진 때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이의 심장 소리를 확인했는데, 임신 8주 때가 되어서야 심장소리가 정상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제야 안도가 되었었다.
그런데 임신 9주의 검진.
커피 맛이 맛있게 느껴졌던 그 주의 검진에서 아이의 심장이 멈췄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임신이 줄곧 되지 않았었는데, 임신을 알게 된 후 처음으로 겪게 되는 유산이었다.
선생님의 입으로 듣게 되는 순간부터 눈물이 터져 나왔고, 내 탓이 아니다 등의 여러 말들이 있었지만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커피가 그렇게 맛있게 느껴졌구나.
그래서 입맛이 돌기 시작했구나.
입덧이 멈췄던 거구나.
이미 그때 심장이 멈췄던 거구나.
여러 생각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이번에는 입덧이 가볍게 지나가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참으로 어리석었다.
내가 치료를 받던 병원은 불임 전문 병원으로 작은 곳이기 때문에 지금같이 계류 유산되어 뱃속에 있는 태아에 대한 조치는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큰 규모의 종합병원을 소개받았고, 선생님의 소개장을 받고, 바로 다음날 병원 예약을 새로 했다.
아이는 남편이 하원을 시켜주고 같이 씻고 저녁밥까지 먹고 난 후에 내가 집에 도착했다.
내가 이렇게 울면서 집에 들어오는 게 처음이다 보니, 남편은 이미 눈치를 챘는지 괜찮다고 말해주고, 아이는 걱정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 슬픈 일 있어?"라고 물어보는 아이가 너무 기특해서 눈물을 닦고, 그대로 샤워를 하면서 눈물을 삼켰다.
혹시라도 다른 병원에서 다른 기기로 확인했을 때 괜찮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갖고 다음날 예약된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이렇게 큰 종합병원 진료는 처음이었는데, 지금까지 다니던 산부인과와 다른 종합병원의 분위기가 안 그래도 위축된 나의 마음을 더 위축시켰다.
종합병원에서의 검진에서도 같은 결과였다.
이미 전주에 심장이 멈춘 듯하고, 이것은 엄마의 문제가 아니며, 이미 수정란 때부터 문제가 있었던 배아였을 것이다라는 것. 이미 출산도 한번 경험했기에 많은 육아서나 글을 통해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머릿속으로는 이해가 갔지만 태아를 잃었다는 슬픔은 이성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선생님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이미 태반 안에 아이가 자라다 말았기 때문에 그 태아를 꺼내는 수술을 할지, 아니면 자연적으로 나오기를 기다릴지를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유산 후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병원으로 갔기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를 선생님에게 물어보자, 현재 배에 통증이 없는 상태라면 4주 정도 기다려보는 것도 좋겠다는 말을 해주었다. 수술을 하는 것보다는 다음 임신 준비를 위해 최대한 몸에 무리가 덜한 방법은 자연 배출이고, 보통 인간은 필요 없는 것을 배출하려는 능력이 주어져있기 때문에 빠르면 2주 늦어도 6주 안에 모두 빠져나온다는 설명도 붙여주었다.
수술을 선택할 경우, 지금이라도 이번 주 안에 수술 날짜를 잡을 수는 있지만 무조건 하루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한다. 수술 전까지는 매일 체온을 체크하면서 열이 나지 않아야 입원과 수술을 진행할 수 있고, 입원하는 날에는 PCR 검사도 해야 하고, 코로나 때문에 중증환자 외에는 보호인의 입장이 되지 않아 혼자 와야 한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수술을 할 경우 입원을 해야 한다는 말에 첫째 아이 걱정이 되었다. 하루 동안 엄마가 안 보이면 불안해할 아이와 그리고 수술 후에 몸 회복이 빠르지 않을 경우 아이를 케어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언젠가 보았던 글 중에 유산 후에 생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글을 보았던 게 생각이 났다. 빨리 몸이 회복했으면 좋겠다는 글이었는데, 그 사람이 자연배출을 했는지 수술을 한 것인지까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자연 배출을 하는 게 몸에 무리가 덜하다는 선생님의 말에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4주 후에 재진료를 받기로 했다. 앞으로 빠르면 2주 그리고 6주 이내에 복통이 있을 수 있고, 출혈이 많이 있을 수 있다는 말도 해주었다. 따로 먹는 약 처방은 없었다.
사실 나도 남편도 식욕은 없었지만, 일부러 걱정되어 병원 진료 마치는 시간에 와준 남편과 함께 근처에서 점심을 사 먹었다. 잘 모르는 동네에 오후 3시 정도로 식사 시간이 아니라서 뭘 먹어야 할지, 어디에 가게가 있는지도 몰라 검색해가면서 가게를 찾아갔다.
더 이상 눈물을 나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웃음도 나오지 않았고, 의사 선생님에게 들은 내용을 그대로 그저 남편에게 전달해주었다. 수술 날짜는 잡지 않았고, 아직 태아가 심장이 멈춘 채로 내 뱃속에 있고, 그 아이가 자연적으로 나오는 걸 기다리기로 했다고.
남편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잘 먹고 잘 회복하자는 말 뿐이었다.
그렇게 4주가 지나기를 그저 기다렸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계류유산에 대해서, 그리고 자연 배출과 수술에 대해서.
한국에서는 이걸 소파술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하고 많은 사람들이 계류유산 후에 수술을 한다고 한다. 그 후에는 몸의 회복을 위해 한약을 지어먹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자연배출보다는 수술을 권한다거나 하는 사람도 많아 보였다.
일본어로도 검색을 해 보았는데 일본에서는 수술보다는 자연배출을 많이 하는 듯했다. 아무래도 몸에 무리가 가는 수술보다는 자연스럽게 배출하는 게 좋다는 인식이 강해 보였다.
일본에도 한약을 지어먹을 수 있는 약방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한약방이 많지 않기도 하고 굳이 알아보지도 않았다. 그저 집에서 하루 세끼 잘 챙겨 먹고, 이 시기에는 미역국을 자주 해 먹었다. 잠도 잘 자기 위해 노력했다.
첫 검진일에서 4주가 지나고 병원에 다시 가는 날이 되었다. 그 사이 출혈이 계속 없다가 검진일 4일 전이 되어서야 약간의 복통과 함께 출혈이 시작되었다.
사실 출혈이 있기 전까지는 몸이 아플게 걱정되기보다 도대체 언제 나오는가가 제일 신경 쓰였다. 계속 내 안에 태아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죄책감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유산을 확인한 후로 거의 4주가 되어갈 무렵에나 출혈이 시작되었는데 그렇게 많지 않은 양의 출혈이었다. 아주 적은 양으로 시작해서 꽤 많은 양이 이틀 정도, 그 후로 조금 묻을 정도의 양이 일주일 정도 계속 되었다.
예정대로 병원 재검진을 갔는데, 대부분 배출은 되었지만 약간의 내부 출혈과 함께 아직 남아있다고 하면서 자궁을 축소시키면서 배출을 도와주는 먹는 약을 처방받았다. 만약 약을 먹고도 4주 재검진 시에 배출이 다 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수술을 할 수도 있다는 말도 들었다.
다행히 약을 먹는 동안에 약간의 출혈이 3,4일간 계속되었고 재검진을 받을 때는 수술 없이 배출이 완료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앞으로 생리가 나오게 된다면 자궁은 회복되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된다면서, 첫 생리 후에 검진을 한번 더 받기로 했다.
언제일지 모르는 기다림만큼 고된 게 또 있을까.
매달 하는 생리가 그렇게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었는데, 생리가 나오지 않으니 그렇게 기다려질 수가 없었다.
유산을 확인하고 약 세 달이 지나서야 첫 생리가 나왔다. 잔여물이 있었던건지 평소보다 생리일도 길었다. 솔직히 말하면, 생리가 다시 나온다는 기쁨이 엄청났다. 이대로 생리를 안 하게 되면, 다시 임신도 못하게 되면 어쩌지 라는 걱정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생리를 한 이후에 병원 검진에서도 자궁에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받고 더 이상 진료는 예약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임신을 시도한다면 두 번째 생리가 끝난 후에 시도하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전문가를 통해서도 회복이 완료되었다는 확인을 받게 되자, 그간의 죄책감이 날아가는 듯했다. 처음부터 나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마음속에 계속 무거운 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 내려놓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아주 가벼워졌다.
꽤 많은 생각을 했다. 이 일을 이렇게 글로 남겨놔도 괜찮을까라는 생각들.
하지만 내가 유산 후에 많은 위로를 받는 순간이 있었다면, 몸을 정상적으로 회복 후에 임신에 성공했다는 경험담들이었기에 아직 임신을 한 상태는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걱정을 덜어주고 싶어 글로 그간의 생각들을 정리해보았다.
유산은 결코 엄마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고, 유산을 하더라도 다시 생리를 한다면 임신을 시도할 수 있고, 계류유산을 했다고 해서 무조건 수술을 하는 게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걸 이번 기회를 통해 많이 생각하고 경험할 수 있었다.
물론 배출이 되기까지 마음이 무거운 그 기간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아마도 수술을 해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사람에 따라 증상도 다 다른 듯하다. 나는 별다른 통증 없이 아이가 유산이 된 것을 확인 후에 자연배출이 되었지만, 통증과 함께 유산을 확인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여러 상황이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엄마의 입장에서 갖게 되는 슬픔이라는 감정은 동시에 존재하고 회복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같지 않을까.
임신 실패와 유산을 통해 정말 남편과 많이 이야기한 것 중에 하나가, 지금 우리 곁에 다가와준 우리 아가가 정말 기적의 아이,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물론 임신을 하고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사랑하고 아끼는 존재이지만, 첫 번째 시험관 아기(체외수정)를 시도하자마자 우리 곁으로 와준 것에도 감사하고, 건강하게 태어나 준 것에도 감사하다.
임신도 쉽지 않고, 출산도 쉽지 않은데 모든 것을 다 해준 존재라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니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비록 예민하고 엄청난 어리광쟁이일지라도, 한동안은 한껏 어리광을 받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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