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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인공수정과 시험관아기 시도하기, 그리고 임신과 출산.

일본 도쿄 생활/일본에서 일상보내기

by 꼬메뜨 2022. 5. 11.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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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자마자 처음부터 계획임신을 시도했다.

물론 계획처럼 잘 되지는 않았다.

우리는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원했기 때문에 계획 임신을 준비했다. 결혼 전부터 각자 아기를 갖기 전에 필요한 검사를 마쳤고, 서로에게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임신과 출산 후에도 꾸준히 먹어야 하는 엽산과 아연 등이 충분히 들어간 영양제도 귀찮다는 생각도 안 하고 매일매일 챙겨 먹었다. 일본에서 임신과 수유 기간에 많이 먹는 영양제로 Elevit(エレビット)라는 게 있었고, 마침 텔레비전에서 광고도 하고 있어서 이걸로 시작했다. 남편도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판켈(FANCL)에서 나오는 멀티비타민(マルチビタミン)을 같이 챙겨 주었다.

 

 

하지만, 모든 게 계획대로 잘 되지 않았다. 결혼 후 1년 동안은 자연임신을 시도했으나, 임신이 되지 않았다.

 

첫 임신을 계획할 때 기초체온을 확인해보라는 여기저기 글을 많이 보았었다. 병원에 검진을 받으면서 상담을 할 때도 의사 선생님께서 종이에 "이렇게 매일 체크하세요."라면서 추천도 해주었다.

 

기초체온을 확인해보면서 임신이 잘 되는 날짜를 맞추기 위해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기초 체온을 재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임신을 준비한다면 기초체온 확인법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 생리가 시작되는 날이면 기초 체온이 확 떨어지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체온이 내려간 걸 보고 임신 실패를 확인하게 되기 때문에 오히려 스트레스만 더해갔다. 

 

이렇게 계속 시간만 보낼 수 없다고 생각되어 더 이상의 지체 없이 결혼 후 2년째부터는 병원의 힘을 받아보기로 했다.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가까운 병원부터.

나도 남편도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회사에서 가까운 병원을 알아보고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초체온은 몇달동안 꾸준히 체크하면서 생리 날짜를 맞춰가며 배란 날짜에 맞춰 시도할 수 있도록 안내를 받았다. 타이밍 법이라고 다들 처음에는 이렇게 시작하는 듯했다. 그렇게 두어 달을 했는데도 임신은 되지 않았다. 

 

이때부터 서로가 좋아서 하는 관계이지만, 마치 숙제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막상 잘 되지 않는 날도 생기게 된 듯하다.

인공수정을 시작했다.

쉬운 게 없더라.

나이는 점점 먹어가는데 자연임신으로는 임신이 어렵다는 걸 직감하게 되면서 우리는 난임이라고 현실을 직시했다. 일본에서는 여전히 불임이라는 단어를 쓰기에 이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 열심히 알아보았다.

 

한국도 일본도 난임부부는 늘어나고 있기에 인터넷 상에 정보는 차고 넘쳤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방법은 인공수정시험관 아기(일본에서는 "체외수정"이라고 표현한다.)였다. 

 

인공수정은 비교적 금액이 저렴하기도 했고, 시험관 아기(체외수정)를 하기에 앞서 시도해볼 만하다고 생각했기에 바로 인공수정을 시작했다. 

 

배란이 될 듯한 타이밍의 날짜에 난포가 터지는 주사를 맞았고, 가능하면 집에서도 관계를 갖고, 소중하게 받은 정자를 내 안에 넣기 전에 병원에서 정자의 상태를 한번 확인해주는 과정이 있었다. 매번 그날의 정자 상태가 평균 이상이다 혹은 평균 이하다 라는 이야기와 함께 "이 정도라면 몇 % 정도대에서 임신이 가능하다."라는 친절한 설명을 매번 함께 들었다. 하지만 설명은 친절할 수 있으나 내 마음을 부서질 때도 있었다. 남편이 원해서 그런 건 아니지만, 인공 수정을 시도하는 3번 중에 2번이 항상 평균 이하를 맴도는 수치였기에 그런 이야기를 듣고 치료를 진행할 때는 기분이 참 별로더라. 정자는 매일 새로 생성되다 보니, 남편의 컨디션에 따라 질이 매번 달라지곤 했다.

 

의사 선생님은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원래 해줘야 하는 이야기인 것인지 정말 매번 수치로 현재를 상태를 알려주고 있었다. 

 

인공수정은 3번을 시도했지만, 3번 모두 실패를 하면서 몸보다는 정신적으로 너무나 스트레스가 심해져 가는 듯했다.

 

결혼 후 2년이 넘도록 자연임신과 인공수정을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으니 이제 남은 건 시험관 아기(체외수정) 뿐이었다.

 

한국과 일본, 어디에서 해야 할까.

시험관 아기(체외수정)를 시도하기에 앞서 우리에게는 갈림길이 놓여 있었다. 

 

보조금 제도가 잘 되어 있고 성공률이 높다고 자랑하는 한국에서 해야 할지, 보조금이 적지만 현재 생활하고 있는 일본에서 해야 할지가 첫 번째 고민이었다. 하지만 이 고민은 생각보다 금방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현재 살고 있는 일본에서 금액이 비싸더라도 시도를 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와 남편 둘 다 여기에서 생활하고 있었기에 임신 시도를 위해 휴직을 써 가면서 한국에 간다는 게 사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한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날리게 되는 비행기 값도 걱정되고, 생리 날짜에 맞춰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가서, 만약에 바로 임신을 한다고 해도 3개월 정도는 한국에서 통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상담도 받았었기에 남편과 떨어져서 지낼 수도 없고, 휴직을 하는 것도 걱정되어 일찌감치 일본에서 시작하는 걸로 마음먹었다.

 

일본에서의 시험관 아기(체외수정) 시도

일본도 나라에서 보조금을 주고 있다.

일본도 한국처럼 출산율이 낮기 때문에 시험관 아기(체외수정)와 함께 불임치료를 하는 부부에게 보조금을 신청할 수 있는 제도가 준비되어 있다. 하지만, 이 보조금을 받을 때까지의 여정이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일본어로 검색할 때는 '체외수정 보조금(体外受精 補助金)'이라고 검색하면 된다.

 

내가 직접 한국에서 시험관 아기를 해보지는 않고 들은 이야기, 인터넷을 통해 접한 정보로는, 한국은 병원에서 진료 후 계산 시에 이미 보조금이 바로 계산되어 참 편리하게 되어 있었다. 

 

일본의 경우, 치료가 모두 끝난, 임신을 하든 임신에 실패하든 결과를 알게 된 다음에야 영수증을 하나하나 다 모아서 보조금 신청서를 낼 수가 있고, 보조금 신청을 한다고 해도 바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내와 남편의 수입과 납부하고 있는 세금 등을 확인해서 이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을 계산하는 과정이 생긴다. 정말 보조금이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는 약 3개월이 걸렸다. 내가 치료하던 당시에는 병원은 도쿄, 살고 있던 곳은 사이타마현이었기에, 신청은 사이타마현에서 해야 했다. 

 

도쿄에서 불임치료 보조금을 관리하는 '도쿄도 복지 보건국(東京都福祉保健局)'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현재는 신청자가 너무 많아서 4개월 이상 걸린다고 한다. 

 

도쿄도 복지 보건국(東京都福祉保健局)에 있는 불임치료 보조금 안내 페이지 

 

東京都特定不妊治療費助成の概要 東京都福祉保健局

東京都特定不妊治療費助成の概要 東京都からのお知らせ 結果通知について  昨年度に比べ申請件数が非常に多く(令和4年1月~3月で年間受付件数の半数ほどである約2万件ご申請いただいて

www.fukushihoken.metro.tokyo.lg.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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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비도 한국보다 비싼 편이고, 보조금도 나중에 들어오지만, 우리는 이게 현재 상태에서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기에 일단 시도하기로 하고 진행해 나갔다.

 

도쿄도에서 등록이 된, 지정된 병원에서 치료를 시작하고 끝내야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 치료하는 동안 주사를 매일 맞는 시기도 있고, 무슨 일이 있을 때 바로 이동하기 좋은 회사 근처의 불임 전문 병원 한 곳을 골라서 치료를 시작했다.

 

시험관 아기(체외수정)를 시도했다.

정말 쉬운 게 없었다.

불임 병원은 처음이었기에 처음에 참 많이 놀랐다. 불임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라는 걸 실감했고, 나 또한 그들 중에 한 명이라는 것에 착잡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사람이 많은 만큼 기다리는 시간이 엄청났다.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통원 치료를 받았기에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은 것인지 당연히도 점심시간에 사람이 더 몰렸다. 

 

생리 시작 후 2일 혹은 3일째에 병원에 내원하면서부터 치료는 시작된다. 

 

한국에서 직접 시험관 아기(체외수정)를 시도해보지는 않았지만, 다르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었다. 인터넷으로 열심히 알아보기로는 난자 채취를 위해서 매일 배에 직접 주사를 놓는다고 했는데, 일본에서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직접 병원에 가서 팔에 주사를 맞았다. 주사를 놓는 곳이 다르긴 했지만 매일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는 것 자체는 꽤나 귀찮은 일이었다. 다행히도 주사만 맞는 날에는 미리 접수 시에 주사만 맞는다고 말하면 기다리지 않고 바로 주사만 놔주기도 했다.

 

제일 공포스러웠던 건 역시 난자 채취였다.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포스럽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했는데 만약 실패하면 정말 마음이 무너질 것 같다는 걱정과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싶은 온갖 잡다한 생각들이 계속 떠올랐다. 

 

힘들었던 난자 채취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전철을 타고 이동했는데, 갈아타는 우에노역에서 전철을 타기 전에 토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병원에서 알려준 준비서에 토할 수도 있으니 봉지를 지참하라는 안내가 있어서 가지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정말 민폐 한국인이 될 뻔했다.

 

체외 수정을 시키기 위해 많은 난자의 채취를 위해서 먹어온 호르몬 약들의 덕분으로 난 16개의 꽤 많은 양의 난자를 채취할 수 있었고, 상태도 아주 좋다고 했다. 레벨이 5개로 나누어지는데, 모두 상급이라면서 의사 선생님이 나중에 칭찬해줬던 게 기억에 남는다. 

 

난자 채취 후 남편의 정자와 수정을 시킨 뒤, 8개 정도가 질이 좋은 상태로 수정이 됐다는 안내를 받았다. 8개나 냉동 보관을 계속 하기에는 금전적인 부담이 크다 보니, 그중에 4개 정도만 냉동보관을 결정했다. 

 

난자 채취 후에 난소가 많이 부어 있어서 바로 시도는 하지 못 했고, 냉동 후 한번 생리를 한 다음 타이밍에 배아 이식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임신에 성공했다.

 

초음파로 보았던 우리 아이
초음파로 보았던 우리 아이

 

너무나 감사하게도, 나는 첫 번째 시험관 시술에 성공해서 임신을 했고, 그대로 임신 유지가 되어 2019년 봄날 출산을 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배아 이식 후에도 유산 방지를 위해 주사를 매일 맞는다고도 하는데, 일본에서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아마도 병원에 따라 처방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주사를 맞는 횟수가 한국과 비교하면 현저하게 적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비교하자면 정신적인 부담은 별로 없었던 듯하다. 하지만 비용은 일본이 약 2,3배 정도는 비싸다고 느껴졌다. 이건 내가 선택한 병원의 계약 조건(?) 때문이기도 한데, 임신 성공 후에 불임 병원은 졸업하는 날에는 임신 성공 조건으로 30만 엔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항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기쁜 마음으로 임신에 성공은 했지만, 30만 엔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조건을 내건 병원은 일본 내에서는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보조금은 불임 병원에서의 치료가 모두 끝난 후 임신 중기에 들어가서야 적어놓았던 계좌로 입금되었다. 그리고 계좌에 입금이 되었다는 안내 엽서가 종이로 날아왔다. 

 

종이의 나라답게 종이로 시작해서, 종이로 마무리가 지어졌다. 

 

만 35세를 넘기고 출산을 했기에 공식적인 노산이었고, 첫 출산이었기에 나는 한국 출산을 결정했다. 다행히도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나주었고, 무럭무럭 자라 올해로 만 3살이 되었다. 

 

출산 후에 찍은 아기 발
출산 후에 찍은 아기 발

 

냉동 보관하던 남은 3개의 수정란에 대해서는... 이다음 이야기에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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