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연말에 아주 좋은 기회로 한 한국 회사에서 오퍼가 들어왔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연장선으로 경력자 출신으로 전직을 할 수 있는 기회였고, 한 번의 웹 면접, 두 번째 직접 면접, 그 후로 2024년 1월이 되자마자 내정 통지를 받고 급여 상담까지 끝내고 내가 결정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급여는 현재보다 월 120만원 정도가 올라가고, 1년 연봉으로 따지면 조금 올라가긴 하지만, 직책이 생기고 나의 커리어적으로는 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다만 현재보다 일이 많이 바빠진다. 그리고, 한 달에 한번 야간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의 상황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직책이 따로 있지는 않았지만, 이 부서 내에서 오랜 경험자로 신입 직원들의 교육도 시키고,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을 때는 대표로 회의에 참가하기도 하고, 대부분의 사양에 대한 질문이 나한테 와서 내가 답변을 하고, 중요한 문서도 내가 작성하고. 정말이지 굉장히 바빴다. 첫째를 임신 중에는 주말에 출근하는 날이 있을 정도였다.
임신을 하고, 출산 휴가 전에 후배들에게 내가 하고 있던 일을 약 두 달에 거쳐 담당 배정(引継ぎ)을 마치고, 출산 휴가, 육아 휴가를 보내고 나서 복귀를 했다.
첫째를 낳고, 복귀를 했을 때 까지는 내가 하던 업무를 다시 맡아서 하기도 했다. 일에 대한 감각이 남아있었고, 코로나로 팬데믹 속에서 그때는 풀 재택근무를 했기 때문에 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엔데믹과 함께 회사에 출근을 하게 되고, 내가 둘째를 임신, 유산, 다시 임신하고 출산하고, 육아 휴직까지 쓰고 다시 복귀했을 때는 이야기가 많이 달라져있었다.
나는 내가 하던 업무에서 배제되었다. 어느 정도 스스로 인정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풀 재택근무일 때는 보육원과 가깝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대응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회사에 출근을 하면서 그러기가 힘들었다. 남편이 풀 재택근무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오기만 할 뿐 그 후의 대응은 내가 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바쁘기도 했고, 남편이 전직을 하면서 쓸 수 있는 유급 휴가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나는 육아 휴직을 끝내고 나서 연차에 따른 유급휴가가 쌓여있었기 때문에 내가 유급휴가를 쓰면서 아이들 케어에 더 힘을 쓰게 되었다.
복귀 후에 일을 다시 시작할 때는 아이와 조금 떨어져서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좋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나의 자존감이 떨어지고 있다는걸 느낄 수 있었다. 원래 내가 하던 업무에서 배제되고, 그 사이에 내가 가르치던 후배는 직급을 달고, 이제는 나한테 일을 시키는 위치에 있게 되었다.
아이들 케어에 힘쓰는 나를 배려해서인지, 크고 중요한 일은 넘어오지 않는다. 딱 내가 8시간 일하고 정시에 퇴근할 수 있는 정도의 일만 들어온다. 그리고 나는 꽤 단련되어 있는 경력직이기 때문에 굉장히 일을 빨리 끝내고 남은 시간에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어쩔 수가 없다. 현재의 나에게 가장 소중한건 아이들, 가족이니까. 하지만 이런 나의 자존감은 누가 지켜주는 걸까.
정말 많이 고민했다. 이대로 전직을 하는게 좋을지, 현재의 상황을 유지하면서 자격증 딸 때까지는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는 게 나을지.
나 보다 경력이 더 많은 선배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남편과도 많이 상의했다.
모두들 현재를 지키는게 낫지 않겠냐는 의견이었다. 5명에게 물어보면, 5명 모두 한결같은 대답이었다.
나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했다. 맞아, 일단은 둘째가 너무 어리니까 현재는 여유롭게 일을 하고, 자격증을 따면서 뭔가를 채워 넣는 게 좋겠다고. 그래서 내정 통지를 받은 회사에는 거절하는 연락을 하게 되었다.
아까웠다. 사실 정말 아까웠다. 그런데, 어쩔 수가 없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어느 정도 커리어를 포기해야 하는걸까. 그냥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에 집중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잔업과 야간작업 등이 있게 되면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진다. 남편이 할 수 있는 일도 있겠지만, 남편의 급여가 더 높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남편에게 무리한 부탁을 할 수도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엄마들이 커리어를 포기하면서 나중에는 회사를 그만두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분하기도 하다. 좀 더 잘할 수 있는데. 육아는 열심히 키워도 잘 키웠다 말 한마디 듣기 어렵지만, 일에서는 성과를 내면 급여가 올라가고, 잘했다는 칭찬이 돌아온다. 육아는 그런 게 너무 없다.
나는 칭찬이 필요했던걸까.
이번 결정을 내리면서 정말 밤잠을 설칠 정도로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에 결정은 이미 해버렸고, 이제 떨쳐버려야 하는데 아직도 조금은 분한 마음이 남아있어 이렇게라고 글로 정리해 본다.
모든 결정을 내리고 일하는 중에 잠시 머리를 식히려고 휴게실에 있을 때였다. 직책을 단 바로 그 후배가 들어와서 심각하게 라인으로 연락을 하고 있었다.
나에게 상담을 시작하더니, 여자친구와의 앞으로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말이였다. 그 후배는 괜찮은 급여를 받으면서 회사에서 일하고는 있지만, 여자친구는 알고 보니 의사였다. 30대가 되면서 결혼 이야기를 진행하려는데, 여자친구가 원래 집이 도쿄가 아닌 지방이었고, 부모님도 의사이고, 본가로 내려와서 의사 활동을 하라고 하는데, 여자친구도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것, 본인의 커리어를 포기하면서 아이를 낳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여자가 이렇게 잘나가는 직업을 가졌다면 더 고민이 클 것이다. 그리고 그게 나라면, 아직 결혼을 하기 전이라면 나 역시 내 커리어를 지키고 싶었을 거라는 생각이 더 들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그런 말을 해주자 후배는 어느 정도 이해를 했다는 표정으로 먼저 나갔다.
학창 시절에 지금 현재의 상황을 모두 알고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후회하지 않을, 선택지가 많은 미래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재의 내가 선택을 할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조금 안도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나쁜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구나. 그리고 앞으로도 좋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꾸준히 열심히 살아가야겠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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